혹자는 말합니다.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가장 위대한 증거는 건설이라고 말이죠. 바다를 육지로 메워 싱가포르의 국토 면적을 7%나 넓힌 현대건설도 그중 하나입니다. 싱가포르에서 현대건설은 지금 또 하나의 사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현지 국토효율화 정책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지하 변전소 건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축구장 4개 규모(약 3만㎡)의 면적과 약 3억 9000만 달러(한화 약 5100억 원)에 달하는 총 공사 금액. 이 프로젝트 중심에 현대건설이 있습니다.
싱가포르 국토 효율화 첫 번째 프로젝트의 파트너가 되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건설사들의 선진 건축기술 각축전이 벌어지는 지역입니다. 현대건설은 아시아 스퀘어 타워, 마리나 원을 비롯해 사우스 비치 타워, 선텍시티 등 싱가포르 내 랜드마크를 다수 건설하며 존재감을 높여왔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2021년 수주에 성공한 싱가포르 전력청 라브라도 프로젝트는 현대건설의 남다른 경쟁력을 증명한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현대건설은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지하 변전소와 34층 규모의 오피스 타워를 싱가포르 서남쪽 파시르판장 지역에 건설하고 있습니다 ]
라브라도 현장은 기존 지상의 변전소를 지하화(지하 4층)하고 지하 변전소를 운영하는 5층의 관리동과 34층(지하 4층)의 오피스 타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국이 주관하는 사업으로 싱가포르 전력청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요. 인프라·도시계획 분야를 통합해 국토 이용을 최적화하는 최초의 시범사업입니다.
그래서 해당 프로젝트는 현지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 지상의 변전소 시설을 지하로 이동시켜, 축구장 4개 크기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규모로 동남아시아 최대입니다. 또한 싱가포르 국토 효율화 정책의 첫 번째 프로젝트라는 점과 더불어 싱가포르 최초로 230kV(초고압)를 다루는 변전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 싱가포르 전력청 라브라도 프로젝트는 2021년 4월 첫 삽을 뜬 후 2024년 9월 지상 운영소와 오피스 타워는 임시사용승인을 획득하였으며, 지하 변전소는 2025년 3월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외부 공원은 2024년 11월, 인근 건물과 연결될 육교는 2025년 3월 공사가 완료될 예정입니다 ]
지질대〮지하 공간의 한계, 기술로 뛰어넘다
현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습니다. 늘 변화무쌍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할 수가 없죠. 그것이 땅속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지하 변전소를 짓는 일은 땅속의 사정을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지질 형태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다루기 까다로운 형태일수록 현장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라브라도 현장은 서로 다른 성질의 두 지질대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어 공사의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두 가지 지질대가 만나는 곳들은 보통 단층암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단일 지반에 비해 더 연약하고 불안정합니다.
현대건설은 토사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강성과 차수 성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지하연속벽* 공법을 적용하고 두 개의 코퍼댐* 형태로 만들었는데요. 코퍼댐 한 개가 자그마치 축구장 2개를 합친 크기에 달합니다. 지하연속벽 공법은 굴착면에 안정액(벤토나이트)을 주입해 붕괴를 방지하며 철근 콘크리트 벽을 완성하는데요. 현대건설은 이 벤토나이트를 부유물 없이 일정한 농도로 관리하며 지하 깊이 안정적으로 파들어갈 수 있게 공을 들였습니다.
*지하연속벽(Slurry Wall): 지하에 철근 콘크리트 벽체를 연속적으로 설치하는 공법. 지반 굴착과 동시에 안정액(벤토나이트, Bentonite)을 공급하여 굴착면의 붕괴를 방지하고 지하수의 유입을 차단합니다.
*코퍼댐(Coffer-Dam): 격벽 사이에 칸막이 격벽을 설치해 구획을 나눕니다.
[ 코퍼댐 형태로 지하연속벽 공법을 적용한 라브라도 현장. 지하 내부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라브라도 현장의 지하 공간은 기둥 위 슬라브 무게를 받치는 ‘보(Beam)’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원 사이에 크로스월과 원 테두리 모양의 보를 임시로 설치해 시공 시 토압을 지지하도록 했습니다 ]
유동인구와 여러 시설이 복잡하게 얽힌 도심에 지하 변전소를 짓는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심의 지중 서비스 라인이 겹쳐 있기 때문에 지하 공사는 생각보다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라브라도 현장 역시 기존 지상 변전소 인근, 지하철 역사와 터널, 고가도로 등이 얽혀 있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시공을 하다 보니 지중 지장물로 인한 어려움이 컸습니다. 현대건설은 100여 번에 걸쳐 지장물을 조사하고 관련 기관들과 공사기간 내내 긴밀한 협조 끝에 수많은 지장물을 제거하고 배수로를 우회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지하라는 한정적인 공간에 OEM 장비, 각종 케이블뿐만 아니라 각종 시설물들을 관리하는 메탈 플랫폼(Metal Platform) 등을 오차 없이 시공해야 했기에 여러 관련 업체와의 코디네이션 역할 또한 중요했는데요. 특히 케이블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지지 구조물을 설계하고 설치하는 케이블 서포트(Cable Support) 과정이 중요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11,000여개의 케이블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상황에서 현대건설은 병원 공사의 코디네이션 업무* 경험을 살려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건축 정보 모델)을 활용해 케이블의 배치 각도까지 정교하게 설계했습니다. 설계 자체를 직접 수행해 발주처의 OEM 업체들과 보다 효율적으로 협업을 할 수 있었는데요. 향후 변전소를 운영하게 될 발주처와도 관리 플랫폼을 설계하고 배치하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병원공사의 경우, 각 실들간 기능적인 배치뿐 아니라 병원 및 건물에 필요한 각각의 시설물들을 코디네이션을 통해 순차적으로 정교하게 시공합니다. 지하 변전소도 한정적인 공간에 OEM 장비들, 각종 케이블 등 필요 시설물을 오차 없이 시공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공사의 코디네이션 경험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 현대건설은 지하 변전소 배관, 케이블 등의 시설물 설계 및 배치를 정교하게 하기 위해 BIM을 활용했습니다 ]
전력 인프라 시설의 제1요소, 안전을 우선하다
기술의 발현 뒤에는 언제나 ‘안전’이라는 든든한 지지대가 존재해야 합니다. 전력 인프라를 다루는 변전소는 국가 중요시설로 간주되어 대테러 및 보안에 대한 요구 조건이 설계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 전력 인프라를 다루기 위해 다양한 방폭 공법이 적용된 라브라도 지하 변전소와 오피스 타워 ]
라브라도 현장도 시공 초기 단계부터 싱가포르 내무부의 면밀한 검측 과정을 거쳤는데요. 현대건설은 지하 변전소와 지상 1층 슬래브 사이에는 2m의 트랜스퍼 슬래브(Transfer Slab)*’를 설치해 혹시 모를 테러로부터 지하 변전소를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공사했습니다. 지상 운영소 역시 기둥에 강철 재킷(Steel Jacket)을 덧씌워 내구성을 강화했죠.
변전소 바로 옆에 시공된 오피스 타워 역시 이러한 방폭 개념이 적용됨에 따라 CFT(Concrete Filled Tube) 공법으로 시공됐습니다. 보통은 콘크리트가 철골 기둥을 감싸는 형태로 제작되지만, CFT 공법의 경우 철골 강관 속에 콘크리트를 타설해 내구성을 높여 외부 방폭 기능을 극대화합니다. 이 공법은 시공 기술과 인력이 부족한 싱가포르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는데요. 다수의 교량 및 인프라 구조물 건설 경험이 풍부한 현대건설은 CFT 공법을 적용해 건물이 충격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시공했습니다.
* 트랜스퍼 슬래브(Transfer Slab): 건물의 하부와 상부 구조를 연결하는 수평 구조 부재. 보통 두껍고 강도가 높은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지며, 큰 하중을 견디기 위해 설계됩니다.
물론 이러한 특수 환경에서만 ‘안전’이 가동되는 것은 아닙니다. 라브라도 현장의 일일 동원 인력이 1,600여 명임에도 지난 2월 무재해 1,000만 시간을 달성할 수 있었던 건 현장 관리에 ‘진심’인 현대건설의 철학 덕분이죠.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현장에서 실시한 PSR(Project Safety Review) 제도인데요. 본공사가 시작되기 전 각 공종 별로 발주처와 컨설턴트와 함께 공사 내용과 안전 사항을 2회에 걸쳐 디테일하게 검토했습니다. 공사가 진행될 때는 AI CCTV가 실시간으로 안전 관련 부적합 사항을 적발해 관련 담당자에게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전송하는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안전은 이렇듯 꼼꼼하고 세심한 과정 속에서 더욱 강화됩니다.
[ AI CCTV가 현장 작업자의 안전 위험도를 체크해 안전 관리자에게 실시간으로 작업자의 위치와 위험요소를 알립니다 ]
건설의 트랜스포메이션, 스마트 에너지 절감 기술이 녹아들다
건설 분야도 산업의 지속가능성 확보와 미래 성장 발판 마련을 위해 스마트 에너지 효율 기술을 도입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죠. 라브라도 프로젝트에서도 스마트 에너지 절감 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AI 및 IoT를 이용한 온도조절시스템을 통해 기존 에어컨 시스템 대비 에너지 효율을 개선시킬 계획입니다. 지하 4층 깊이의 열 저장 탱크도 시공했는데요. 밤시간에 냉각된 저수조의 물을 낮 시간 냉방에 활용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선순환하는 시스템으로 싱가포르 건설청의 ‘그린 마크(Green Mark Platinum Super-Low Energy)’ 인증을 획득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가까운 미래, 선진 기술의 이정표를 약속하다
국토가 한정되어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도심지의 혐오시설을 지하화하고 기존의 지중 서비스들을 재정비하는 사업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습니다. 라브라도 프로젝트와 유사한 지하 변전소 프로젝트를 대거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현지 정부가 해당 프로젝트에 거는 관심과 기대감이 크다는 하나의 방증입니다.
현대건설의 지하 변전소 건설 경험은 향후 싱가포르 재개발 사업에서 그 어떤 곳보다 선명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대대적인 변화의 선두에 서서 첫 번째 파도를 근사하게 타고 있는 현대건설. 두 번째 파도의 주인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죠? 가까운 미래, 선진 기술의 이정표가 될 싱가포르 라브라도를 시작으로 끝없이 펼쳐갈 현대건설의 ‘드림 로드’를 기대해봅니다.
[ 싱가포르 전력청 라브라도 프로젝트 현장 직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