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는 환경과 기술에 따라 건설업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설시장을 리드해온 현대건설 또한 핵심 미래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방식을 벗어난 건설의 혁신은 넥스트 노멀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핵심 키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현대건설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 시선을 통해 이를 진단해 보는 칼럼을 기획 연재합니다.
글=정지훈(해외건설협회 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 / 일러스트=이유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위키미디어
■ 중동 붐, 올해도 계속 될까?
[ 고층 빌딩이 즐비한 카타르 도하의 신시가지 전경 ]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충돌로 인해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건설업계의 시선은 초조하기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동 건설시장은 지난해부터 최대 호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설전문지 미드(MEED)에 따르면 지난해 중동 건설시장의 총 계약금액은 2,537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는 36%를 차지하는 920억 달러를 기록하며 최대 시장임을 입증했죠. 우리나라도 지난해 333억 달러라는 높은 해외 수주고를 올린 데에는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함께 수주한 사우디 아미랄 석유화학 프로젝트(51억 달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 지난해 역대 최대 계약액을 기록한 중동 건설시장. 사우디(920억 달러)에 이어 UAE(780억), 카타르(190억), 쿠웨이트(82억) 순으로 계약이 활발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출처: MEED) ]
글로벌 시장 조사기업 <IHS Markit(24.1)>에 따르면 올해 세계 건설시장은 지난해보다 4.4% 성장한 14조 4433억 달러로 전망된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초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예상되는 중동시장이 가장 높은 10.3%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죠. 고유가 전망도 유지됐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에너지청(EIA)에 따르면 올해 국제유가 전망치는 80달러 내외로, 이는 중동 지역 대규모 투자나 사업 발주 등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 8500억 달러 기가(Giga) 프로젝트가 기대되는 사우디
[ 사우디 최대 도심개발 중 하나인 뉴 무라바 프로젝트의 큐브형 건물, 무카브 조감도(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
중동건설 시장 중에서도 글로벌 건설사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국가는 사우디입니다. 5조 리얄(약 1500조원)의 투자로 탈석유·경제 다각화를 추진한다는 ‘사우디 비전 2030’에 따라 대규모 인프라 공사나 도시개발 프로젝트가 추가로 기대되었기 때문이죠. 올해는 네옴 프로젝트를 비롯해 총 8,545억 달러 규모의 기가 프로젝트 발주가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올해 기대되는 프로젝트 가운데는 수도 리야드를 기반으로 한 1,0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도심개발 사업인 뉴 무라바(New Murabba, 새 광장) 프로젝트가 가장 눈에 들어옵니다. 최첨단 교통 인프라, 엔터테인먼트, 혁신적인 공원과 광장 등을 조성한다는 이 사업은 가로‧세로 길이가 각 400m에 달하는 초대형 무카브(Mukaab, 사진)가 랜드마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900억 달러 규모의 주택개발 프로젝트인 로쉰(Roshn) 프로젝트, 약 1억 2천만 명을 수용하기 위한 킹살만(King Salman) 국제공항과 공원 조성사업(530억 달러), 200억 달러 규모의 주거·문화·쇼핑 복합공간을 개발하는 디리야 게이트(Diriyah Gate) 등 초대형 프로젝트들이 본격적인 시동을 걸 것으로 보입니다.
■ 사우디 건설시장의 오랜 파트너, 대한민국
우리 건설사의 활약도 대단합니다. 우리나라는 1973년 사우디 건설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총 1,863건, 1,657억 달러에 이르는 수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현대건설은 점유율 18%로 1위를 차지하고 있죠. 현대건설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지는 추세인데요. 최근 10년(2014~2023년) 동안 사우디에서만 135억 달러를 수주하며 국내 사우디 수주의 35%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질적인 성장도 눈에 띱니다. 과거 단순 토목·건축 중심의 수주에서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플랜트 설비나 고난도 토목·전력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발주처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네옴 프로젝트에도 참여 중입니다. 현대건설이 참여 중인 러닝터널은 NATM(New Austrian Tunneling Method) 공법을 활용해 해발 1,200m 고지대 사막에서 발파․보강․라이닝(터널 마감) 구조물 공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 고난도 인프라 공사에는 스마트스캐너로 두께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거나 레이저 스캐너로 터널 단면을 정밀하게 관리하는 스마트 건설기술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2022년 아람코의 중장기 성장 프로젝트인 나맷(Namaat) 프로그램의 파트너 기업으로 선정된 이래, 지난해에는 사우디 현지 기업과 HRCC(Hyundai Al-Rashid Construction Co., Ltd) 합작법인을 세우는 등 사우디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 사우디 현지화 정책에 따른 우리 기업의 진출 전략
기회의 땅인 사우디에도 난관은 있습니다. 사우디는 ‘지역본부유치정책(RHQ, Regional Headquaters)’이나 ‘사우디제이션(Saudization, 사우디인 고용 현지화 정책)’ 등 자국 보호 정책이 많아 기업들이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람코의 IKTVA(In Kingdom Total Value Add) 같은 대규모 투자 파트너십이나 사우디 전력청의 BENA(Build&Employ National Abilities)와 같이 발주처의 자국 산업 육성정책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RHQ는 메나(MENA, Middle East & North Africa)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지역본부를 두게 하는 정책으로, 지역본부가 없는 기업은 사우디 정부 조달 프로젝트에 참여가 제한됩니다. RHQ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본사가 위치한 국가와 사우디 외에도 최소 다른 2개 국가에 자회사 또는 지사가 설립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우디 내에서 영리적 활동을 위해서는 별도 사우디 법인 또는 지사 역시 설립해야 하죠. 지난해부터 사우디 정부는 RHQ제도 시행을 본격화 하고 있습니다. RHQ를 설립하지 않은 기업은 어떠한 정부기관 또는 정부 에이전시와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개별 기업을 넘어 해당 기업의 관련업체와도 원칙적으로 계약을 불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우디 자국민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니타카트(Nitaqat)’ 정책도 우리 기업에게는 허들이 높습니다. 니타카트는 업종과 인원별로 사우디인의 고용 비율을 세분화하여 등급을 분류하고 있는데, 사전 고지 없이 비정기적으로 의무 고용률을 인상하기도 합니다.
해외기업의 진출이 확대되자 변화하는 법률도 있습니다.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민영화법이 2021년부터 시행되는가 하면, 지난해 1월부터 발효된 ‘회사법’으로 인해 회사의 설립이나 합병 절차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고 제한 사항들을 폐지하기도 했죠. 현재 심사 중인 ‘신투자법’은 외국 기업을 사우디 국내 기업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우디의 법과 제도 변화는 인접 국가인 UAE, 카타르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입니다.
■ 미래 유망사업 및 스마트 건설기술 등 고도화 전략 필요
[ 사우디 아람코 중장기 성장 프로젝트 파트너社로 선정된 현대건설의 협약식 모습(왼쪽)과 현대건설이 사우디 우쓰마니아에 건설한 에탄회수처리시설 전경(오른쪽) ]
현재 사우디는 네옴 프로젝트는 서막에 불과할 정도로 초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이어지는 최대 건설시장입니다. 현대건설을 비롯한 많은 국내 기업들이 수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국, 일본, 유럽, 인도, 터키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K-건설 특유의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역량으로 향후 전망은 낙관적입니다.
특히, 현대건설은 대형원전과 SMR분야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인정받고 글로벌 파트너링(Partnering) 전략을 통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만큼 중동 지역에서의 입지도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여겨집니다. 더불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건설기술도 강점 중 하나입니다. 현대건설은 IoT 센서 기반의 안전관리플랫폼인 ‘하이오스(HIoS, Hyundai IoT Safety System)’를 적용하여 현장관리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BIM 기반의 AR 품질관리 플랫폼도 자체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죠. 최근에는 검측 계획부터 하자 관리까지 실시간 대응이 가능한 ‘큐 포켓(Q-Pocket)’을 통해 실시간 품질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시공분야의 스마트 기술에도 앞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사우디의 공격적인 미래비전과 건설계획에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특히 단기 프로젝트보다는 중장기적 수주가 진행되는 대단위 프로젝트가 많아 기대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후 비약적인 성장을 이끈 우리 건설기업들에게 대규모 인프라 공사와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들은 분명 경쟁력 있는 일감이기도 합니다. 국내 건설사들은 현지 기업 혹은 글로벌 선진기업과의 파트너링을 통해 수주 경쟁력을 강화하고, 스마트 건설기술을 통한 시공능력 향상으로 8,545억 달러에 이르는 사우디 시장 대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중동지역의 불안정한 정세가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아 모처럼 찾아온 해외 건설시장의 훈풍을 이어가기를 소망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현대건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