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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작가 박상준의 북촌기행 시리즈 #1] 현대건설 사옥 둘레길

2022.10.14 5min 44sec

지하철 3호선 현대건설역. 서울교통공사가 진행한 '지하철 역명 유상병기 사업자 공모'로 인해 지난 9월부터 안국역에 붙여진 새로운 부역명입니다. 현대건설인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일상공간인 안국역. 이곳의 숨은 이야기와 매력을 전문가의 시각으로 만나봅니다.



제생(濟生)에서 관천(觀天)까지

우주적이며 낭만적인 현대건설 사옥 둘레길



20세기 거리 박물관


한옥과 생활간판이 건재해 서울의 시간을 재생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계동길 풍경

[ 한옥과 생활간판이 건재해 서울의 시간을 재생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계동길 풍경 ]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청계천과 종로 북쪽 일대를 이릅니다. 삼청동, 가회동, 계동, 원서동, 익선동 등이 북촌에 속하는데, 주로 조선시대 서울의 권세 있는 이들이 모여 살았고 관청이 밀집했던 곳입니다. 그 가운데 계동은 20세기 초에서 현재에 이르는 궤적이 자수를 놓듯 촘촘합니다. 

서울은 조선에서 대한민국에 이르는 600년 수도지만 그 시간의 풍경이 성기어 세월의 흔적을 느끼기엔 아쉬움이 남습니다. 계동이라면 그 갈증이 풀립니다. 그래 봐야 600년 가운데 100여년 아니냐 말할 수 있어도 서울 전역에서 이런 길을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1920년대 조성한 한옥 주거단지에서 한국전쟁 이후 문을 연 참기름 가게와 60~70년대에 생겨난 대중목욕탕과 소아과의원, 1980년대 지어진 현대건설 사옥을 지나 21세기의 핫 플레이스가 된 크고 작은 레스토랑과 숍, 갤러리까지. 그야말로 20세기의 살아있는 거리 박물관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백양세탁소’, ‘믿음미용실’ 같은 건재한 생활 간판들 역시 대를 이어 마주하는 풍경입니다. 하물며 현재진행형이죠.

계동을 즐겨 찾는 이들은 그 오랜 일상의 공기를 채집하며 즐깁니다. 그 안에서 서울이 잊고 지낸 ‘동네’나 ‘골목’이라 할 만한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간질여 웃음 짓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계동 산책이 한옥 풍경의 가회동 못지않게 사람 냄새 나는 원서동과 잘 어울리는 것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구제한다는 계동의 옛 이름 ‘제생(濟生)은, 종종 서울의 시간을 재생한다는 의미로 들리곤 합니다.



계동길의 랜드마크, 계동의 당산목 현대건설


독립운동 테마역인 안국 현대건설역. 내부 곳곳에는 독립운동을 기리는 문양과 표식이 붙어있습니다.

[ 독립운동 테마역인 안국 현대건설역. 내부 곳곳에는 독립운동을 기리는 문양과 표식이 붙어있습니다. ]


계동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지척입니다. 안국역은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독립운동 주제 역사로 거듭났습니다. 인근에 독립 운동과 관련한 유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계동길 끝에는 3.1독립운동을 계획했던 중앙고 숙직실이 자리합니다. 2.8 독립선언서 초안이 전달됐던 장소입니다. 그 길 중간 즈음에는 만해 한용운이 *<유심>을 발행하던 출판사 유심사 터가 있고, 원서동 넘어가는 길에는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의 집터가 자리합니다.

*유심(惟心) :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시인 만해 한용운이 1918년 9월 창간한 대중적 불교잡지입니다. 

*여운형: 독립운동가 겸 정치가로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발기하는 등 한국의 사정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가 사장이었던 조선중앙일보사(朝鮮中央日報社)는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폐간되기도 했습니다.


1983년부터 안국역을 지켜온 현대건설 본사 사옥 전경

[ 1983년부터 안국역을 지켜온 현대건설 본사 사옥 전경 ] 


안국역은 얼마 전 또 한 번 변신했습니다. 이름이 안국역에서 안국(현대건설)역으로 바뀐 것이죠. 현대건설은 우리나라 현재의 풍경을 대부분 시공한 대표 건설사입니다. 대표 대중교통인 지하철의 산 증인이기도 한데, 최초 지하철 1호선 7공구(1974)를 포함 서울지하철 1~9호선 13개 프로젝트가 현대건설의 솜씨입니다. 무엇보다 본사 사옥이 계동에 터를 잡은 이후로는 안국역과 계동길의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계동을 찾는 이들은 안국역을 나와 제일 먼저 보이는 현대건설을 지표로 삼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습니다. 그 곁을 지나 그대로 계동길로 스밉니다. 도로의 들썩한 소음은 몇 걸음 떼지 않아 거짓말처럼 수그러듭니다. 뒤를 돌아보면 율곡로는 저만치 뒤쳐집니다. 마치 타임 슬립인가 싶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현대건설 빌딩의 존재감입니다. 15층 건물은 마을 입구의 당산목(堂山木)처럼 서서 도심의 혼잡으로부터 계동을 안위합니다. 1983년에 지어졌으니 어느덧 40년에 가깝습니다. 급변하는 서울 도심에서 40년은 긴 세월입니다. 그러니 안국 현대건설역이라는 역명에 기시감마저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현대건설 사옥 전면부에 붙어있는 두 개의 표석. 제생원은 조선 초 국립병원이자 학교의 역할을 맡았던 곳이고, 계동궁은 고종의 사촌형인 이재원의 저택이었던 곳입니다.

[ 현대건설 사옥 전면부에 붙어있는 두 개의 표석. 제생원은 조선 초 국립병원이자 학교의 역할을 맡았던 곳이고, 계동궁은 고종의 사촌형인 이재원의 저택이었던 곳입니다. ]


안국 현대건설역이라는 이름은 그 터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계동의 지명은 제생원(濟生院)에서 기인했습니다. 제생원이 있다는 의미의 제생동이 계생동을 거쳐 계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제생원은 조선 초기 나라에서 운영한 의료기관입니다. 주로 서민의 질병 치료와 미아 보호 등을 관장했다고 합니다. 그 터가 지금의 현대건설 자리입니다. 현대건설 남서쪽 화단에는 지금도 옛 터를 가리키는 표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말에는 그 터에 계동궁(桂洞宮)이 들어섰습니다. 계동궁은 고종의 사촌형 이재원이 살던 집으로, 고종은 *갑신정변 때 김옥균 등의 개화파에 의해 창덕궁에서 경우궁으로 다시 계동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3일천하’의 중심이었던 셈입니다. 이후에는 고종으로부터 ‘휘문의숙’이라는 교명을 하사받은 휘문 중․고등학교가 현대건설 사옥이 들어서기 전인 1978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갑신정변: 조선 고종 21년(1884)에 김옥균, 박영효 등의 개화당이 민씨 일파를 몰아내고 혁신적인 정부를 세우기 위하여 일으킨 정변. 거사 이틀 후 수구당과 청나라 군사의 반격을 받아 삼일만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낡고 오랜 아름다움의 동네


현대건설 본관과 별관 사이에 자리 잡은 맞춤 양복점 노커스(上)와 북촌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홍보관으로 활용 중인 북촌문화센터(下]]의 고즈넉한 풍경은 이곳은 찾는 이들에게 힐링을 선사합니다.


현대건설 본관과 별관 사이에 자리 잡은 맞춤 양복점 노커스(上)와 북촌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홍보관으로 활용 중인 북촌문화센터(下]]의 고즈넉한 풍경은 이곳은 찾는 이들에게 힐링을 선사합니다.

[ 현대건설 본관과 별관 사이에 자리 잡은 맞춤 양복점 노커스(上)와 북촌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홍보관으로 활용 중인 북촌문화센터(下)의 고즈넉한 풍경은 이곳은 찾는 이들에게 힐링을 선사합니다. ]


계동길은 보통 현대건설 앞 제생원 터 표석에서 출발해 길 끝의 중앙고까지 약 650m 일대를 아우릅니다. 좌우로 나 있는 샛길을 오가며 마을 풍경을 담을 수 있는데, 서쪽의 가회동이나 동쪽의 원서동까지 확장해 북촌 산책을 즐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제생원 터에서 계동으로 들어서면 곧 양복점 ‘노커스(KNOCKERS)’를 지나게 됩니다. 계동에서는 제법 친숙한 얼굴인 노신사 한 분이 책을 들고 지나가는 이들과 눈을 맞춥니다. 멋쟁이 노신사는 중후하게 나이 들어가는 계동의 풍경과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이어 북촌문화센터가 바통을 잇습니다.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을 모델로 지은 1920년대 한옥인 이곳은 일제강점기 *탁지부 재무관을 지낸 민형기의 집입니다. 그의 며느리 이규숙 씨가 쓴 구술집 <이 ‘계동 마님’이 먹은 여든 살>로 인해 계동마님 댁으로도 불립니다. 현재는 서울시 소유로 북촌의 관광과 행사 정보를 얻고 전통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탁지부(度支部): 대한제국 때 국가 전반의 재정(財政)을 맡아보던 중앙 관청으로 지금의 재무부와 같습니다.


계동의 첫 갈림길에 자리 잡은 비스트로 & 와인바 ‘이잌(右’)은 과거 최소아과의원 간판(左)으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장소입니다.

[ 계동의 첫 갈림길에 자리 잡은 비스트로 & 와인바 ‘이잌(右’)은 과거 최소아과의원 간판(左)으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장소입니다. ]  


북촌문화센터를 지나자 계동의 첫 갈림길이 나옵니다. 눈길을 끄는 남서쪽 모퉁이의 2층 벽돌집은 현재는 장진우 셰프가 운영하는 비스트로(이잌)지만 계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옛 최소아과의원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어김없이 건물의 2층 모서리 간판의 빈자리를 일별하고서 걸음을 옮깁니다. 시골에서도 좀체 보기 힘든, 여백 없이 ‘최소아과의원’ 여섯 글자로 꽉 채운 간판은 옛 중앙탕 간판과 더불어 계동의 마중이었습니다. 특히 얼기설기한 글자의 조합은 획일화된 도심에 균열을 일으켜 온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몇 해 전까지 소아과의원으로 ‘영업 중’이던 곳이라, 그 기억은 계동 사람만이 아닌 계동을 즐겨 찾는 모든 이의 추억이기도 합니다.

계동길 산책은 대체로 최소아과의원 앞에서 곧장 중앙고등학교를 향해 직진합니다. 100여년 계동의 다부진 역사를 살피기 알맞은 길이라 대부분이 이 경로를 따릅니다. 하지만 오늘은 옛 최소아과의원 앞에서 오른쪽 창덕궁1길로 방향을 잡아봅니다. 현대건설 사옥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도는 구간입니다. 몽양 여운형 집터와 원서공원, 공간 사옥을 지나 관천대가 있는 현대건설 사옥으로 회귀하는 길입니다. 제생원 터를 기점으로 약 800~900m의 짧은 거리지만 계동은 물론 원서동까지 아우릅니다. 쉼과 이야기 그리고 볼거리 모두 만족할 만한 북촌의 덜 알려진 산책 구간이자 점심시간이면 현대건설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을 대거 만나는 구간입니다. 



계동과 원서동을 잇는, 현대건설 사옥 둘레길


한말 교육ㆍ계몽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여운형 선생의 집 터 표석(左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북촌 1경(右’)으로 꼽히는 창덕궁 전경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 한말 교육ㆍ계몽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여운형 선생의 집 터 표석(左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북촌 1경(右’)으로 꼽히는 창덕궁 전경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


계동에서 원서동으로 향하는 창덕궁1길은 그 길만의 풍광이 있습니다. 주변의 카페나 레스토랑에 크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이 길이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알아채기 쉽습니다. 앞서 안동손국수집 앞에서 숨을 한번 고릅니다. 몽양 여운형 집터를 가리키는 표석이 보입니다. 이 표석에는 1936년 몽양이 ‘조선중앙일보사장 재직 시 손기정 사진에 일장기를 말소’하였다고 적혀있습니다. 그가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의 광복 후 첫 집회는 1945년 8월 16일 휘문중에서 있었습니다. 지금의 현대건설 자리입니다. 

여운형 집터를 지나자 비로소 고갯마루가 시작됩니다. 오르막 경사는 그 너머의 풍경을 가려 기대감을 점점 고조하다가 정점에서 창덕궁의 풍광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길 끝의 담장 뒤편 창덕궁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인정전과 궁궐 전각의 처마가 중첩되는 풍광은 단숨에 수백 년 시간을 건너뜁니다. 북촌팔경의 제 1경으로 손색없는 절경입니다. 창덕궁1길은 이 하나의 장면만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곳이 북촌 1경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현대건설이 사옥을 건립 때 함께 조성한 현대원서공원은 시민들의 휴식과 도심지의 녹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현대건설이 사옥을 건립할 때 함께 조성한 현대원서공원은 시민들의 휴식과 도심지의 녹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창덕궁1길은 창덕궁 담장 앞에서 창덕궁길과 만납니다. 도로명은 창덕궁길이지만 동네사람들은 아직도 원서동이라는 옛 이름으로 부릅니다. 원서동은 ‘창덕궁 후원의 서쪽’에서 온 이름입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창덕궁과 후원을 이웃한 이 동네는 북촌에서 가장 고즈넉합니다. 율곡로와 접한 현대원서공원은 그 아늑함을 누려 머물기 좋은 쉼터가 됩니다. 현대건설이 사옥을 건립하며 사회 환원한 공원으로 약 200년 수령의 회화나무 고목이 너른 그늘을 드리며 운치를 더합니다. 그새 40년 남짓의 세월이 흘러 계절색이 짙고 풍성해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단풍 진 그늘 아래 쉴만한 자리도 많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그 터에 궁중의 미곡과 간장, 된장 등의 장을 관리하는 관청 사도시(司䆃寺)가 있었다고 합니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사옥(左)’은 건축사무소와 월간지 <공간>의 편집실로 사용되다 현재는 갤러리로 활용 중이며, 현대건설 사옥 동쪽 앞에 자리 잡은 ‘관상감 관천대(右)’는 조선 전기 기상을 예측하는 왕립천문기상대인 서운관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천체 관측 시설입니다.

[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사옥(左)’은 건축사무소와 월간지 <공간>의 편집실로 사용되다 현재는 갤러리로 활용 중이며, 현대건설 사옥 동쪽 앞에 자리 잡은 ‘관상감 관천대(右)’는 조선 전기 기상을 예측하는 왕립천문기상대인 서운관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천체 관측 시설입니다. ]    


원서공원 곁은 건축가 김수근의 옛 공간 사옥입니다. 좁은 대지를 잘게 쪼게 들어앉은 1970년대 벽돌집과 1990년대 유리집, 2000년대에 편입한 한옥이 한 몸을 이룹니다. 현재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갤러리, 카페 등을 통해 이용 가능합니다. 그리고 다시 원점인 현대건설로 돌아옵니다. 마지막 환대는 사옥 동쪽에 위치한 보물 문화재 서울 관상감 관천대입니다. 관상감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천문 관측소로 이곳의 관천대는 높이 4.2m 가로 2.8m, 세로 2.5m의 ‘작은 첨성대’에 해당합니다. 원래는 계단이 있어 관상감의 관리들이 관천대 위에 *간의 등을 올려두고 기상을 관측했다고 합니다.

*간의(簡儀): 조선 시대에 천체의 운행과 현상을 관측하던 기구의 하나로 세종 1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현대건설 사옥을 중심으로 계동과 원서동을 잇는 약 10분간의 둘레길에는 조선시대부터 근대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 현대건설 사옥을 중심으로 계동과 원서동을 잇는 약 10분간의 둘레길에는 조선시대부터 근대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 


현대건설 주변 계동과 원서동을 잇는 산책은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사람을 구제한다는 ‘제생(濟生)의 터에서, 별을 바라보는 관천(觀天)의 대로 마무리하는 셈입니다. 왠지 우주적이며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지나온 걸음이 마음 한편에 별자리처럼 남습니다. 그 별들의 발자국을 무어라 불러야할까요? 현대건설 주변을 네모나게 한 바퀴 도는 길이니 ’현대건설 사옥 둘레길‘이라 불러도 무방하겠습니다. 관상감은 세조 때 새로 붙인 이름이고 세종 때는 서운관(書雲觀)이라 불렸습니다. 길 건너편 운현궁의 운현(雲峴)은 서운관 앞 고개라 해 붙은 이름입니다. 옛 사람의 작명을 따라 운현궁으로, 익선동으로 걸음을 옮겨 발끝의 별자리를 이어가도 좋은 가을날입니다.



글. 박상준

대학에서는 조경학을 전공하고, 여행주간지 〈프라이데이〉와 영화주간지 〈씨네버스〉 취재기자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며 한국관광공사 등에 일상과 밀착한 여행 정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서울 계동과 부암동을 좋아합니다. 저서로는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오!!! 멋진 서울> <엄마, 우리 여행가자> <다른 제주에 가다> <울릉도100배 즐기기> 등이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현대건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이슬기, 박상준 / 인포그래픽=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