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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보신문 400호 기념 특집 ] 과거 vs 현재, 그 시절 우리를 만나다

2021.05.26 5min 37sec

누구에게나 반짝반짝 빛나는 20대의 시작, 스무 살이 있습니다. 2001년 9월 28일 창간해 어느덧 지령 400호, 스무 살이 된 <HYUNDAI E&C TODAY>. 사보신문이 성년이 되기까지 함께해 준 모든 임직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과거 사보신문을 빛내줬던 사우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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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가 고민이던 2030 청춘... 베테랑 유부남이 되다


사보신문 400호를 기념하며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선 사우들. (우측사진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구영 책임(재무관리실), 신종우 책임(사업지원실), 배창훈 팀장(국내투자개발실), 신주환 책임(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3공구 건설공사 현장)

[ 사보신문 400호를 기념하며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선 사우들. (우측사진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구영 책임(재무관리실), 신종우 책임(사업지원실), 배창훈 팀장(국내투자개발실), 신주환 책임(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3공구 건설공사 현장) ]


2000년대 중 · 후반 재정부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4인방이 2021년 다시 뭉쳤습니다. 사보 97호(2006년 2월 28일자) 취재 당시 미혼이던 신주환 책임과 정구영 책임은 어느덧 결혼을 해 배창훈 팀장과 함께 학부형이 됐고, 신종우 책임은 대학생 자녀를 뒀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추억인데, 사진을 보니 바로 기억이 나네요. 신주환 책임의 결혼을 축하하며 강남의 한 지하 호프집에서 만났잖아요.” 배창훈 팀장

“하하. 그때 참 고마웠어요. 얼마 전 사우디 현장에서 복귀해 한국이 아직 어색한데, 사보신문에서 기회를 주셔서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신주환 책임

당시 기사의 핵심은 ‘공 · 경 · 애 클럽’. 공 · 경 · 애는 공처가 · 경처가 · 애처가의 줄임말로, 배창훈 팀장은 인터뷰에서 “술은 1차에서 가볍게 끝내는 것이 행복한 부부생활의 지름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종우 책임 역시 “아내가 최고!”라며 배 팀장 못지않은 사랑꾼임을 드러냈습니다. 15년이 지나 모두가 유부남이 된 지금, ‘공 · 경 · 애 클럽’은 여전히 유효할까요?

“사실 실제 있는 클럽은 아니지만, 배 팀장님은 아마 댁에서 ‘공 · 경 · 애’ 할 거예요. 하지만 단연코 술은 1차에 끝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웃음).” 정구영 책임


이 말을 들은 배창훈 팀장, 자신은 “가사 일에 남녀 구분을 두지 않는다”며 결혼 19년차 베테랑 유부남의 면모를 뽐냈습니다. 

“저는 여자가 하는 일, 남자가 하는 일 구분 짓고 싶지 않은데, 아내는 꼭 음식물 쓰레기는 저보고 버리래요. 아내는 기획과 지시를 맡고, 저는 행동 담당이니 조금 억울하죠(웃음). 하지만 살아보니 아내의 말을 잘 듣는 것이 가정의 평화와 저를 위해 두루 좋은 것 같아요. 가정 평화를 위한 또 하나의 팁은 건강이에요. 제가 아프면 우리 가족이 그만큼 힘드니까요.” 배창훈 팀장

여기에 질세라 “음식물 쓰레기는 잘 싸서 버리고, 손 한 번 씻으면 끝”이라며 신종우 · 신주환 책임이 말을 보탭니다. 

“예나 지금이나 서로 배려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저는 저녁은 웬만하면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해요. 그 시간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신종우 책임

“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가사 분담은 물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적극적이죠. 예전에는 TV를 보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면,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요.” 신주환 책임

어느덧 15년, 세월의 흔적은 나이테처럼 스며든 주름 몇 줄에 드러나지만 네 사람의 건강한 미소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사보신문은 자주 만나지 않아도 변함이 없는 좋은 친구”라는 이들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HYUNDAI E&C TODAY>에 바라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집에 사보신문을 가져가면 가족들이 더 관심 있게 봐요. 아이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사보에 가득 담겼죠. 벌써 400호라니 놀라워요. 멈추지 않고 쭉 발행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을 많이 담아주세요.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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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빠일까요?


차분하면서도 선한 인상이 똑닮은 나태수 책임(싱가포르 남북도로(NSC) N113_N115 건설 공사 현장)과 붕어빵 아들 승원.

선한 인상이 똑닮은 나태수 책임(싱가포르 남북도로(NSC) N113_N115 건설 공사 현장)과 붕어빵 아들 승원.

[ 차분하면서도 선한 인상이 똑닮은 나태수 책임(싱가포르 남북도로(NSC) N113_N115 건설 공사 현장)과 붕어빵 아들 승원. ]


사보신문 130호(2008년 7월 30일자)에 등장한 ‘붕어빵 부자’ 나태수 책임과 아들 승원군이 400호를 맞아 사보신문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양팔에 올록볼록 나온 살과 오동통한 볼살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승원군은 어느덧 청소년이 됐습니다. 살이 쏙 빠진 모습이지만, 붕어빵 부자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기엔 차분하면서도 선한 인상이 아빠와 똑 닮았습니다. 

“아빠~ 초등학교 2학년 때 갑작스러운 아빠의 해외 발령으로 아빠와 싱가포르로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됐어요.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 많이 하셨죠? 덕분에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잘 적응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항상 건강하세요. 제가 많이 사랑해요!” 아들 나승원

“내 삶에 가장 큰 행운은 아마도 승원이를 만난 것이 아닐까? 건강하게 잘 커 줘서 고마워. 어디서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길 바란다. 아빠의 작은 바람은 코로나로 외출이 자유롭지 않다는 건 알지만, 집에서 게임과 유튜브 시청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야. 물론 그만큼 아빠가 일찍 집에 들어가서 재미있게 놀아주도록 노력할게. 아빠는 항상 승원이 편이야. 사랑해. 더불어! 해외 애독자 중 한 명으로 사보신문이 나오는 날을 늘 기다렸는데, 벌써 400호가 발행됐나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매번 감동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며, 계속 애독하겠습니다. 파이팅!” 나태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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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철도공사 멘토와 멘티... 현장의 팀장이 되어 만나다


멘토와 멘티가 다시 공항철도 서울역 앞에 섰습니다. 영동대로 지하 공간 복합개발 2공구 건설공사(토목) 현장 김재우 사업수행팀장(왼쪽)과 대곡~소사 복선전철 민간투자시설사업 사업단 백진욱 공무팀장. 오른쪽 사진은 과거의 모습입니다.

[ 멘토와 멘티가 다시 공항철도 서울역 앞에 섰습니다. 영동대로 지하 공간 복합개발 2공구 건설공사(토목) 현장 김재우 사업수행팀장(왼쪽)과 대곡~소사 복선전철 민간투자시설사업 사업단 백진욱 공무팀장. 오른쪽 사진은 과거의 모습입니다. ]


2004년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SOC 민자 사업이자 신기술·신공법 도입으로 화제를 모은 인천국제공항철도 건설공사 프로젝트의 두 주역이 17년 만에 만났습니다. 사보신문 64호(2004년 7월 23일자)에서 “우리도 1000년 개런티를 시도해 볼까?”라고 말했던 두 사람의 재회 장소는 그들이 열정을 받쳤던 공항철도 서울역. 당시 멘토(과장)와 멘티(사원)였던 백진욱 팀장과 김재우 팀장은 어느덧 각각 민자철도 경력 27년, 지하 공간 프로젝트만 20년차인 베테랑이 됐습니다. “건설사 직원들은 매번 ‘공구리(콘크리트)’ 친 이야기만 한다”며 아쉬워하면서도, 어김없이 공사 이야기로 귀결되는 두 사람 대화는 오랜만의 만남에도 일말의 어색함 없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제가 먼저 홍보실에 연락했을 거예요. 장소도 <앙코르와트 보물전>으로 제가 정했죠.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가 지은 거야'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는 뜻에서 고대 건축물을 관람하고 싶다고요. 재우 팀장도 당시엔 총각이었지만 이젠 아이가 있으니 공항철도를 타면서 ‘아빠가 있던 현장이야’라고 말하겠군요.” 백진욱 팀장

“탈 때마다 딸에게 말하죠(웃음). 엊그제 영동대로 지하 공간 복합개발 2공구 현장에 발령받았지만, 그 전에는 서울 제물포로 지하화 현장에서 5년 반 정도 근무했어요. 사실 형님(백진욱 팀장)이 계신 현장까지는 차로 30분이면 갔을 텐데, 각자 현장이 바빠 둘이서 밥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했어요. 사보신문 덕분에 근 20년 만에 얼굴 맞대고 대화하네요.” 김재우 팀장

백 팀장은 17년이 지나도 20대 사원이던 김 팀장의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합니다. 현장에서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밤 9시까지 동고동락하다 보니 가족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됐습니다.

“여기저기서 재우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유능한 공사 책임자라고요. 그럴 때마다 제가 칭찬을 듣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요.” 백진욱 팀장


흔히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으면 전문가라고 말합니다. 비슷한 듯 조금은 다른 각자의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두 사람은 자신들을 전문가로 만들어준 회사에 지면을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대심도 현장만 다녔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오히려 회사가 지하 공간에 대한 기술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아 감사해요.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부할 정도가 됐으니, 과거 백 팀장님 말씀처럼 100년을 넘어 1000년 개런티를 시도해 보고 싶은 바람이에요.” 김재우 팀장

“저 역시 회사가 오래도록 한 분야에 있도록 발령을 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전문가가 됐거든요. 회사에서 쌓은 지식을 후배들에게 잘 전수하기 위해 사내 교육용으로 '철도의 이해'라는 책도 썼어요. 이런 아웃풋을 낼 수 있도록 힘을 키워준 것이 바로 회사죠.” 백진욱 팀장

“400호를 봤으니 500호, 1000호도 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떠는 두 사람. 사보신문에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보신문은 반가운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매체예요.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보던 사람들이 사보에 나오면 옛 추억이 생각나고 무척 반갑더라고요. 사보에서는 직원 참여형 기사를 더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또 ‘사우들이 말하는 생활 꿀팁’ 같은 기사도 실렸으면 좋겠어요. 세련되지는 않아도 그게 우리가 사는 이야기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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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방문한 아빠의 일터... 현대 가족이라서 자랑스러워요!


그때 그 시절처럼, 아빠가 파견 나간 현장을 방문한 임광태 책임 가족. 엄마, 아빠 품에 꼭 안겨 있던 어린아이들이 어느덧 대학생이 됐습니다

[ 그때 그 시절처럼, 아빠가 파견 나간 현장을 방문한 임광태 책임 가족. 엄마, 아빠 품에 꼭 안겨 있던 어린아이들이 어느덧 대학생이 됐습니다. ]


과거 사보신문에서는 현장에 방문한 아내가 남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당신의 일터’라는 코너가 인기를 모았습니다. 사보신문 44호(2003년 8월 1일자)에는 당시 성남~장호원간 도로건설 2공구 현장에 근무 중이던 임광태 책임의 아내 김영실씨의 메시지가 실렸습니다.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안전모를 씌워 아빠가 일하는 현장을 보여주고자 했던, 열정 가득한 그 시절을 다시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시 촬영 장소는 대쌍터널이었어요. 무더운 여름날이었지만 터널 내 · 외부 온도 차가 20도 넘게 나서 추웠는데, 아이들이 춥거나 무섭다고 울지 않고 밝게 웃어줘서 고마웠던 기억이 나네요.” 임광태 책임

2003년 현장의 안전을 관리하던 임광태 책임은 2021년 안전지원실의 사후파트 파트장으로 전국의 현장을 다니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18년이란 시간의 흐름은 아빠와 엄마 품에 꼭 안겨 있던 수하양과 도헌군 역시 자라게 했습니다. 어느덧 대학생이 된 두 자녀는 엄마를 번쩍 들 수 있을 정도로 장성했습니다. 사보신문의 한 칸을 장식한 그 시절 기사는 두 자녀와 아내 김영실씨에게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저희의 모습과 젊은 시절 부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항상 아침 일찍 바쁘게 출근하시고 누구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아빠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저희 아빠는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만큼 저희와의 시간도 소중히 여기시는 최고의 아빠랍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추억을 많이 쌓는 가족이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해요!” 딸 임수하, 아들 임도헌

“그 시절 기사를 보니 ‘이런 때가 있었지’ 하고 마냥 웃음이 났어요. 6세, 4세 아이들은 어느덧 성년이 되어 든든함과 행복감을 주는 존재가 됐어요. 덕분에 옛 추억을 되새겨 보고, 비슷한 콘셉트로 사진도 찍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어요. 또 한 번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을 위해 고생해 준 나의 반쪽 임광태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요!” 아내 김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