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3년 서울 남산에서 북악산 방향 파노라마 사진©한국저작권위원회 vs. 현재 모습
"I Love Seoul!"
콜드 플레이의 크리스 마틴부터 서울의 에너지를 찬사한 앤 헤서웨이까지,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이 입을 모아 서울을 이야기합니다. "요즘 서울에 외국인이 왜 이렇게 많아?"라는 콘텐츠가 바이럴될 만큼, 지금의 서울은 세계가 선망하는 가장 세련된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심코 걷는 이 길과 매일 건너는 이 다리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건 아닙니다. 현대건설은 기억 속 흐릿한 20세기의 풍경을 지금의 일상으로 바꾸며 서울의 지도를 새롭게 그려왔습니다. 그리운 그 시절 기억 위로 현대건설이 빚어낸 오늘의 서울을 겹쳐봅니다.
EP.1 | 청계천
고가도로 아래 숨어 있던 600년 물길이 돌아왔다

청계천은 서울에서 가장 사랑받는 산책로입니다. 봄이면 유등이 떠다니고, 여름이면 냇물에 발을 담근 사람들, 가을엔 억새가 흔들리고, 겨울엔 루미나리에 불빛이 수면 위로 번집니다. 연인들이 어깨를 맞대고 걷고, 퇴근길 직장인이 잠깐 앉아 숨을 고르는 곳. 이곳이 한때 하늘 위를 달리는 고가도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인왕산과 북악산에서 발원해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청계천은 조선 시대엔 빨래터이자 아낙네들의 수다 공간이었고, 근대화의 물결이 몰려오던 시절엔 판잣집이 다닥다닥 들어선 서민들의 삶터였습니다. 그러다 물길을 완전히 덮고 1971년에는 콘크리트 고가도로가 났습니다. 당시로선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이 길은 하루 16만 대의 차량이 오가는 도심의 대동맥이 됐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쌓이면서 미처 보지 못한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콘크리트 아래 갇힌 물은 썩어 악취를 풍겼고, 노후한 구조물은 안전을 위협했으며, 고가 주변은 슬럼화됐습니다. 차가 달리는 동안, 강물은 점점 잊혀 갔죠.
![사람·도시·물의 만남……청계천 새 역사 KBS 9시 뉴스 2005-10-01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47년만에 다시 시민의 품으로 서울신문 2005-10-01 다시 열린 청계천, 그 물길따라 역사가 흐른다 경향신문 2005-09-27 사람·도시·물의 만남……청계천 새 역사 KBS 9시 뉴스 2005-10-01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47년만에 다시 시민의 품으로 서울신문 2005-10-01 다시 열린 청계천, 그 물길따라 역사가 흐른다 경향신문 2005-09-27](/FileContents/EditorImg/20260416/2026_현대건설_응답하라_770_4.jpg)
잊혀가던 강물이 다시 햇빛을 본 건 2003년의 일입니다. 그해 7월, 현대건설은 청계천 복원 사업 3공구(청계8가~신답철교) 시공을 맡아 고가도로 상판을 걷어내고 노후 복개 구조물을 해체했습니다. 그 자리에 생태 용수 공급 시스템을 갖추고 물이 다시 흐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꼬박 2년여. 2005년 10월 청계천은 시민들 앞에 다시 열렸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산책로이자, 가장 새로운 풍경은 그렇게 우리 곁에 자리잡았습니다.
사실 현대건설과 청계천의 인연은 처음 시작부터였습니다. 1958년, 전후 복구의 활기가 가득하던 시절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덮어 도시의 기틀을 닦았던 것도(청계천 암거가설공사), 1971년 그 위로 근대화의 동맥인 고가도로를 세운 주인공도 현대건설이었습니다.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며 서울의 성장을 견인했던 손길이 청계천의 모든 굽이마다 스며 있었던 셈입니다.

EP.2 | 성수대교 & 서울숲
다리를 건너 숲으로, 회복과 힐링으로 이어진 길

한강의 11번째 교량, 성수대교입니다. 출퇴근 차량이 줄을 잇고, 러닝족들이 경쾌하게 주변을 오갑니다. 강 건너 성수동에는 카페와 편집숍이 늘어서 있고, 주말이면 남녀노소 트렌드를 찾아 나선 이들이 거리를 채웁니다.
오늘날 성수동의 활기찬 일상을 잇는 진입로인 성수대교는 한때 예기치 못한 아픔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1994년 가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성수대교는 잠시 멈춰 섰습니다. 그러나 이 멈춤은 더 단단하고 안전한 다리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복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1995년 4월, 현대건설이 성수대교 재건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구조 안전성과 시공 품질을 근본부터 다시 세우는 작업이었습니다. 설계와 시공 전반을 재검토하고, 안전 기준을 한층 강화하는 과정을 거쳐 2년 8개월 만인 1997년 7월 3일, 성수대교는 다시 개통됐습니다.

그리고 8년 뒤, 현대건설은 이 다리 바로 곁, 뚝섬에서 또 하나의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과거 경마장과 골프장이 있던 약 116만㎡(35만 평) 규모의 부지. 조선 시대에는 왕의 사냥터였고, 이후에는 시민들의 여름 피서지로 기능했던 이 땅은, 2005년 6월 ‘서울숲’이라는 이름의 도심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서울숲은 단순한 공원이 아닙니다. 도시의 생태와 휴식을 회복하는 공간이자, 산업과 개발의 흔적을 삶의 공간으로 전환한 사례입니다. 숲과 습지, 문화와 체험 공간이 어우러진 이곳에는 주말마다 돗자리를 펴는 가족, 사슴 우리 앞에 모인 아이들, 은행나무 숲길을 걷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성수대교와 서울숲은 서로 다른 기능의 공간이지만, 하나의 흐름 위에 놓여 있습니다. 한쪽은 도시의 단절을 잇는 인프라이고, 다른 한쪽은 도시의 삶을 회복하는 공간입니다. 붕괴의 기억 위에 다시 세워진 다리와, 개발의 흔적 위에 조성된 숲. 이 두 공간은 도시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EP.3 | 여의도
모래벌판 위에 세워진 민주주의의 푸른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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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여의도는 그저 홍수 때마다 물에 잠기던 황량한 모래섬이었습니다. 비행장으로 겨우 쓰이던 허허벌판. 그 위에 1969년 국회의사당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현대건설이 조인트 벤처(JV) 형식으로 참여한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연 대한민국 건축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방대한 규모의 석공사였습니다. 축구장 10개를 채우고도 남는 화강석(4만 5,668㎡)과 대리석(2만 6,925㎡)이 한 땀 한 땀 쌓여 장엄한 외관을 완성했고, 1975년 마침내 그 정점인 초대형 돔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직경 64m의 돔을 올린 이 건물은 준공 당시 단일 의사당으로 동양 최대 규모를 기록하며,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 건축 기술로 구현해낸 기념비적인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국회의사당이 중심을 잡자 여의도의 풍경은 급변했습니다. 방송사와 금융기관이 몰려들었고, 대한민국 경제와 정치의 심장부로 빠르게 진화했습니다.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은 계속 높아졌지만, 국회의사당 주변만은 여전히 단정하고 평온합니다. 엄격한 고도 제한이 선물한 이 여백 덕분에 이 일대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탁 트인 하늘을 품게 되었습니다.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함성이 광장을 메우던 날에도,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던 결정적인 순간에도 초록빛 돔은 늘 그 자리에서 묵묵한 배경이 되어주었습니다. 동시에 봄날의 흩날리는 벚꽃을 만끽하거나 가을밤 불꽃의 향연을 즐기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휴식처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무게와 일상의 활기를 동시에 품은 채, 국회의사당은 오늘도 여의도 하늘 아래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서 있습니다.

EP.4 | 코엑스
세계로 통하는 길, 강남 한복판에 세워지다

코엑스는 지금 서울에서 가장 바쁜 공간 중 하나입니다. 별마당 도서관 책장 사이를 누비는 사람들, 주말 팝업 스토어엔 줄이 길게 늘어서고, 건물 밖 미디어 파사드 앞에선 누군가 영상을 찍습니다.
코엑스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문을 열었습니다. 무역회관, 전시장, 호텔, 백화점이 집대성된 이 단지는 대한민국이 세계와 본격적으로 무역을 시작하던 시대, 그 야망을 상징합니다. 이후 공간은 계속 확장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하는 낡고 복잡해졌습니다. 미로 같다는 말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2013년부터 2014년,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코엑스몰 리모델링을 맡았습니다. 막혔던 공간을 열고, 자연채광을 끌어들이고, 동선을 다시 짰습니다. 2014년 11월 그랜드 오픈한 코엑스몰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지하가 목적지가 됐고,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대건설은 이 일대에 또 하나의 공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엑스에서 삼성역까지 약 1,000m 구간, 지하 시설 면적 21만㎡의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 공사를 진행 중인 것이죠. GTX-A·C를 비롯해 지하철 2·9호선까지 수도권 철도망이 한 곳으로 집결하는, 서울시가 '한국판 라데팡스'로 부르는 미래형 교통 허브입니다. 강남의 대표로 세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해온 삼성동. 현대건설은 그 변화의 매 순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EP.5 | 압구정동
압구정 현대, 50년 헤리티지를 완성하다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은행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등 동과 동 사이를 가득 채운 50년 가까이 자란 수목이 이곳의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낡았지만 넓고, 오래됐지만 고요합니다.
원래 이곳은 한강변 모래밭이었습니다. 현대건설이 경부고속도로를 공사하면서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매립해 둔 땅이었습니다. 1975년 4월, 그 모래밭 위에 첫 삽이 꽂혔습니다. 5층짜리 아파트가 주를 이루던 시대에, 현대건설은 한강변에 15층짜리 대단지를 올렸습니다. 중대형 평면, 넓은 발코니, 체계적인 단지 계획. 당시로선 파격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교통과 생활 인프라 부족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주거 가치가 재평가됐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수요가 유입되면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강남 주거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1976년 첫 입주 이후 14차 단지까지 12년에 걸쳐 그 규모가 6,000여 세대에 달합니다. 압구정 현대는 하나의 단지를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주거 풍경이 됐습니다.

그리고 2025년 9월, 현대건설은 압구정2구역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됐습니다. 처음 이 땅에 아파트를 세운 기업이 50년 만에 다시 이곳의 미래를 설계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건설은 ‘압구정 현대’ 명칭의 상표권을 출원하고, ‘100년 도시’라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건축을 넘어, 기존의 정체성과 장소성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반세기 전 이곳에 새로운 주거 기준을 세웠던 현대건설은 압구정 현대를 통해 그 헤리티지를 다시 한번 확장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