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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남부 도시, 바스라.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플랜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낮 기온이 50도를 훌쩍 넘나드는 이곳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땅이자 동시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원유 수출에 의존해온 이라크가 가솔린과 프로필렌, 초저유황 경유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직접 생산하며, 산업 구조 전환이라는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여정 속에서 현대건설은 거친 환경을 뚫고 도전을 현실로 만드는 든든한 파트너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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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대지 위에 세운 에너지의 심장,
바스라 정유공장 고도화설비 프로젝트
기존 정유공장은 원유를 분리(증류)해 나프타, 등유, 경유, 중질유, 잔사유 등 다양한 석유제품을 생산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전히 부가가치가 낮은 중질유와 잔사유 같은 기름이 많이 남게 됩니다. 원료의 경제성이 점점 중요해지고, 최근 가솔린과 초저유황 경유와 같은 고품질 연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저가 원료를 첨단 설비를 통해 더 값비싼 제품으로 전환하는 ‘고도화 설비’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바스라 정유공장 고도화설비 프로젝트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이라크의 에너지 자립과 경제 구조 개선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총 37억 7,800만 달러 규모의 이 사업은 현대건설과 일본 JGC가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2026년 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각 설비 유닛의 기능과 안정성을 점검하는 시운전 단계로 밤낮 없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9월 21일 첫번째 가솔린 제품 생산을 이루어 냈습니다.

철과 불꽃,
바스라의 시간을 세우다
바스라 정유공장 고도화 프로젝트 현장은 현재 플랜트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는데요. 2020년 가을, 현대건설은 일본 JGC와 손을 맞잡고 서울과 요코하마에서 초기 설계와 현장 개설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이듬해 현장은 가설·기초 공사를 진행하며 뼈대를·단단히 세웠습니다. 동시에 본사와 현장에서 설계와 기자재 구매를 병행했고, 세계 곳곳에서 제작된 설비와 자재가 속속 현장으로 모였습니다.
2023년에 접어들며 철골 구조물이 들어서고, 기계·배관·전기·계장 등 주요 공정이 빠르게 전개됐습니다. 특히 수백 톤에 달하는 장비가 크레인에 매달려 제자리를 찾아가는 순간은 현장 직원 모두가 주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상하이에서 제작된 모듈들도 운송 후 설치되며 플랜트는 점차 완성도를 높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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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질 경유를 가솔린, 경유, LPG 등으로 바꾸는 대형 설비(LGO-HDT) 설치 모습. 공장에서 만든 모듈을 현장으로 옮겨와 크레인으로 조립합니다 ]
2024년은 '설비가 숨을 쉬기 시작한' 전환점이 된 해였습니다. 각 변전소에서 전력이 공급되고, 유틸리티 내 물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면서 스팀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본격적인 시운전이 시작된 것인데요. 수소 생산 설비와 황 회수, 아민 처리, 탈황수 처리 설비까지 차례로 가동 준비를 마치며 플랜트의 혈관과 호흡기가 연결되었습니다.
2025년 현재, 현장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전 공정의 시공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각 유닛과 시스템별 시운전이 한창입니다. 동시에 잔공사 정리와 펀치(Punch, 잔여 보완) 작업도 이어지며, 플랜트는 점차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생명체처럼 박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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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의 심장과 맥박을 뛰게 하는 힘
플랜트의 심장: 유동접촉분해설비(Fluid Catalytic Cracking Unit, FCC)
바스라 정유공장 고도화설비 공정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설비 중 하나는 유동접촉분해설비(FCC Unit)입니다. 플랜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 설비는 중질유를 고부가가치 제품인 가솔린과 프로필렌으로 전환하는 핵심 장치로, 플랜트 전체의 효율과 수익성을 좌우합니다. 마치 딱딱한 고기를 압력솥에 익히고 양념을 재워 맛을 내듯, 고온·고압 상태에서 원유가 촉매와 반응하며 최적의 생산성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FCC는 플랜트 내에서도 가장 덩치가 크고 복잡한 장비와 배관망으로 구성됩니다. 수백 톤에 달하는 반응기와 재생기를 설치하고, 수많은 고온·고압 배관을 연결하며 정밀 용접 작업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가연성 유체를 다루기 때문에 폭발과 화재 위험도 항상 존재하는데요. 현장에서는 반응기 내부의 온도와 압력을 단 1℃, 1bar라도 흔들림 없이 유지하기 위해 수십 개의 계측기를 설치하고, 통합 제어실에서 24시간 모니터링을 이어갔습니다. 시운전 단계에서는 촉매 활성도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승부처였고, 이를 위해 수차례 시뮬레이션과 실험이 반복되었습니다.
플랜트의 혈액: 수소 생산 설비(Hydrogen Production Units, HPU)
플랜트 전체에 혈액처럼 수소를 공급하는 수소 생산 설비(HPU)도 중요합니다. 공장 구석구석 수소를 공급해 여러 성분을 깨끗이 정제하는, 일종의 공기청정기 역할을 합니다. 두 개의 유닛을 합쳐 시간당 9만 Nm³의 99.9% 고순도 수소를 생산하는데, 이 수소가 없으면 탈황과 올리고머화 공정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바스라 특유의 혹서와 불안정한 전력 사정이었습니다. 예고 없는 전력 변동 속에서도 안정적 운전을 이어가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다중 안전장치와 비상 운전 모드가 적용되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실제 시운전에 들어가기 전, 수십 차례의 리스크 분석과 모의 운전을 통해 변동 상황에 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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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의 신경망: 디지털 제어 시스템(DCS)·통합 모니터링 플랫폼
FCC와 HPU를 포함해 진공 증류, 황 회수 등 여러 유닛과 더불어 저장 탱크, 보일러, 전력, 제어 센터 등 플랜트 전반의 유틸리티 설비까지 동시에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통합 운전 역시 핵심 과제였습니다. 온도, 압력, 유량의 작은 변화도 전체 공정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디지털 제어 시스템(DCS)과 통합 모니터링 플랫폼이 도입되었습니다. 시운전 단계에서는 다양한 돌발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 테스트가 반복됐으며, 설비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세심하게 점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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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거나 사용되는 LPG(액화석유가스)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대형 저장탱크와 플랜트 전반에 증기와 열을 공급하는 보일러. 원활한 설비 운전과 에너지 공급, 안정적인 연료 관리를 위해 필수적인 주요 유틸리티 시설입니다 ]
국제적 난관과 현지 환경에 맞선 바스라 현장
프로젝트를 완수하기까지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적 난관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인력·자재 이동 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수급 차질 등 여러 복합적인 도전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움카사르항을 통한 대형 설비 반입 과정에서는 세관 절차 지연과 물류 차질이 반복되었지만, 현장에서는 사전 운송 시뮬레이션과 정밀한 리프팅 계획을 세워 대형 장비 이동을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낙후된 전력망과 통신망 역시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았으나, 자체 발전 설비와 통신망을 구축하는 등 다양한 극복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현대건설과 일본 JGC, 발주처 SRC(이라크 남부정유회사)는 반복적인 워크숍을 통해 문제를 공유하고 해법을 모색하며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여름에는 기온이 섭씨 50도를 훌쩍 넘고, 예고 없는 모래폭풍이 작업장을 멈춰 세우는 혹독한 현지 환경 속에서도, 하루 평균 1만 4천여 명의 다국적 인력이 힘을 모아 현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졌지만, 모두가 ‘안전’과 ‘품질’이라는 한 목표 아래 움직이고 있는데요. 현대건설은 글로벌 기준의 안전·품질 시스템을 기반으로, 위험 작업에 대한 사전 평가와 승인, 주기적인 내부 감사, AWP(Advanced Work Packaging) 등 선진 시스템을 적용해 효율과 안전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JSO(작업 안전 관찰), Respect & Care, 인센티브 제도 등을 통해서도 모든 인력이 자발적으로 안전 문화를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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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라 정유공장 고도화설비 프로젝트는 2026년 2월 최종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상업 운전이 시작되면, 이라크는 자국 내 연료 자립을 실현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과 산업 성장 등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한 공정 관리 역량과 글로벌 안전·품질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동 플랜트 시장에서 한층 강화된 경쟁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바스라 정유공장 고도화 프로젝트가 대형 정유·석유화학 플랜트 EPC 분야에서 현대건설의 새로운 도약을 이끄는 이정표가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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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라 정유공장 고도화설비 프로젝트 현장 직원들]
현장 리포터=사업지원팀 김태현 파트장